[아름다운 우리말] 경직된 전문 용어 벗어나기
학문에서 개념을 정리하고 용어를 확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현대 학문이 과학을 강조하고 객관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용어와 개념을 명확히 한다는 것은 학문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용어가 지나치게 경직될 필요는 없습니다. 용어라고 하는 게 기본적으로는 적절한 비유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용어 사용을 보면 너무나도 건조하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 일반인을 학문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국어학과 한국어 교육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보면 서양의 이론에서 가져온 용어가 대부분입니다. 그중에는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번역어도 많습니다. 그런데 서양 학자들의 명명을 보면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재미있습니다. 즐비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이를 번역해 놓은 우리말이 훨씬 어려울 때가 많고 그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비계, 거꾸로 수업, 환류, 문턱’ 등의 표현은 어떤 말을 번역한 것일까요? 영어의 ‘scaffold, flipped learning, wash back, threshold’ 등의 용어는 모두 비유입니다. 학문에 비유적 표현을 쓰면 안 될 것이라는 편견은 벗어나야 합니다. 실제로 영어교육의 논문 제목을 봐도 도전적이고 비유적인 제목이 많습니다. 우리 논문의 제목은 지나치게 점잖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문의 엄밀성을 이유로 용어와 제목이 경직되면 창의성도 굳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우려합니다. 한편 용어를 비유적으로 하는 것과 개념이 명확한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공부의 시작은 개념 정리라고 생각합니다. 개념을 명확히 정리할 수 없으면 공부의 기초가 흐트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개념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선생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설명력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공부는 명확한 개념 정리가 시작이라면 창의적인 사고가 끝인 셈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정리하고 답습하는 것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 우물만 파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만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나의 시각을 넓혀 줍니다. 넓게 보는 것이 창의력의 원천이 됩니다. 그야말로 시야가 넓어진 것입니다. 창의력과 비유는 묘한 관계가 있습니다. 비유나 상징은 내 생각의 한계를 넓혀주는 장치입니다. 어떻게 설명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다양한 비유를 떠올립니다. 과장법이라든가 직유법이라든가 하는 것은 내 한계를 넓히는 일입니다. 때로는 동물에 비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천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물아일체, 혼연일체의 경지에서 바라보면 창의력을 더 커지게 됩니다. 새로운 개념을 떠올리게 되면 거기에 맞는 명명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단어 조합으로 간단히 끝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창의적인 생각일수록 용어를 붙이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때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비유인 셈입니다. 비유는 나의 정리를 돕고 상대의 이해를 돕는 과정입니다. 비유가 개념의 바다를 흔들리지 않고 항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비유가 도전의 다른 이름입니다. 생각에 상상력을 더해 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면 좋겠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경직 전문 전문 용어 용어 사용 비유적 표현